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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호 작가의 에세이 ‘평양몽夢의 하늘’ 출간평양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또 책을 냈다. 벌써 다섯 권째다. 도서출판 은누리가 박원호 저자의 북한 수도 평양 및 도시 인프라에 관한 책 ‘평양몽夢의 하늘’을 발간했다. 저자 박원호(69)는 건설 분야 현역 기술사로, 2015년부터 북한 수도 평양을 비롯해 북한 도시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동안 네 권의 책을 발간했고, 이번 책도 속편 성격이다. 첫 책 ‘북한의 도시를 미리 가봅니다’(가람기획, 2019)를 발간한 이후 4권의 책을 발간했다. 이번 책 ‘평양몽의 하늘’은 부제가 ‘에세이로 읽는 북한 도시 비전’이다. 제목만으로는 선뜻 감이 안 오지만 부제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평양몽’은 ‘강남몽’에 빗대 저자가 지어낸 말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강남몽’이 상징하는 것처럼 ‘평양몽’도 상상의 범위가 부챗살처럼 넓게 펴진다. 평양몽을 꾸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그 꿈이 오색 무지개 빛깔이든 깜깜한 그믐밤 같은 칠흑빛이든 간에 말이다. ‘평양몽의 하늘’은 이들 다양한 꿈들이 투영된 스크린인 셈이다. 전력 총생산에 있어 북한은 남한의 3%에 지나지 않는다. ‘자력갱생’의 구호는 빈말이 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남북 경협을 통한 건설 협력과 남북 합작 해외 진출과 같은 실현 가능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책의 특징1. 북한 수도 평양과 도시 인프라의 변화상을 프로젝트별로 소개한다.2. 북한 김씨 세습 정권별 건설정책의 평가를 프로젝트별로 소개한다.3. 서해안 간척사업부터 원산갈마해안 관광지구 사업까지 근황을 소개한다.4. 수도 평양의 5만 세대 건설사업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5. 남북 간 건설협력과 개방 시 벤치마킹 대상 해외 도시를 비교 설명한다.‘아는 길도 물어가라!’ 환히 ‘아는 길’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예전에 알던 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양과 도시 인프라에 관해 가급적 현주소를 알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기술사이자 시집을 5권 낸 시인으로, 엔지니어의 눈과 시인의 감성으로 복잡한 건설 프로젝트도 쉽게 설명해 놓았다.1. 딱딱한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 풍이라 술술 읽힌다.2. 평양 및 북한 전역의 주요 인프라 사업들에 대해 소개한다.3. 북중러 국경인 두만강 하구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근황까지 소개한다.4.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출처 분명한 정보를 바탕으로 설명한다.5. 북한 개방 시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는 하노이, 쿠바 등의 프로젝트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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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우라' 광주 고려인마을서 3·1절 만세운동 재연105주년 3·1운동을 기념하는 만세 재연 행사가 1일 광주 광산구 고려인마을 일대에서는 동포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한복을 차려입고 한 손에 태극기를 든 고려인들은 마을을 돌며 당시의 3·1운동을 재연했다. ‘빼앗긴 조국, 그날의 함성’이란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3·1절 행사는 고려인마을 주민과 광주시민, 보훈 단체, 기관장 등 330여명이 함께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광주로 피난 온 우크라이나 가족들도 함께했다. 월곡 고려인문화관에서 출발한 이들은 태극기를 든 채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다모아 어린이공원까지 500여m를 행진했다. 이후 이어진 기념행사에서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삼창을 한 뒤 독립군가를 합창했다. 우크라이나 피난민 다냐(30) 씨는 "교육기관에서 배워 3·1절에 대해 알고 있다"며 "한국의 아픈 역사를 기리고자 오게 됐는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하루빨리 끝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조국의 광복을 기원했던 선조들의 아픔을 기억하고자 2000년대 초반부터 3·1절 만세운동 재연 행사를 열고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연해주 거주 고려인은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의 피어린 투쟁이 이어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한 선조들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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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이주 160주년…인천·안산·연해주서 기념사업올해 '고려인 이주 160주년'을 맞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국회,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력해 추진하는 기념사업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동북아 지역 동포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동북아평화연대(동평·이사장 김현동)는 오는 22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고려인/한인 이주 16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발대식을 개최한다고 20일 밝혔다. 동평 관계자는 "2024년은 러시아 연해주 지신허(地新墟) 마을에 13가구의 한인이 정착한 후 160주년이 되는 해"라며 "세계 코리안 디아스포라 역사의 시발점인 연해주와 국내 고려인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축제의 장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사업의 슬로건은 '세계 코리안 네트워크와 문화로 유라시아 평화 협력'이다. 추진위는 올해 11월까지 지역별로 조직을 꾸리고 경기 안산시, 인천광역시 등과 협업해 우즈베키스탄 고려 무용단 국내 순회공연, 홍범도 장군 사진전, 고려인 이주 160주년 톡 콘서트, 동북아 동포 정책 토론회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또 연해주에서는 아리랑 가무단 순회공연, 코리안 미술가 공동 창작 및 전시, 160주년 기념식, 고려인 음악가 기념 공연, 블라디보스토크 오케스트라 초청 음악제, 한·중·일·러 예술단 공연, 유라시아 청소년 댄스 대회 등을 진행한다. 특히 지속 가능한 재외 한인 공동체 발전을 위해 차세대 한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차세대들이 한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경헙 의원, 임채완 사단법인 재외동포연구원장이 맡는다. 임 공동위원장은 "과거 고려인 등 재외동포는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독립운동을 위해 이주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 했다"며 "지금은 모국 사회와 연계해 경제·문화 교류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자로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진위에는 이부영 전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 이해찬·이인제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추진위원장, 이구홍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이윤기 해외한민족연구소장 등이 참여한다. 또 광주고려인마을, 대한고려인협회,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 이주동포정책연구원,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재외동포협력센터, 재외한인학회, 재한동포연합총회, 중국동포연합중앙회, 지구촌동포연대 등 단체들도 힘을 보탠다. 동평과 고려인지원단체 사단법인 너머(이사장 신은철)가 추진위 사무국 역할을 담당한다. 재외동포청과 인천시, 충북 제천시, 안산시 등은 후원한다. 한인의 러시아 이주는 1863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제정 러시아 당국이 정착 허가를 내준 1864년을 이주 원년으로 보고 기념행사를 진행해왔다. 러시아 공식 기록상 정착 시점은 1864년 9월 2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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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삼일절 ‘빼앗긴 조국, 그날의 함성’ 재현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재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는 오는 3월 1일 '고려인 만세운동 101주년' 기념하는 삼일절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14일 밝혔다. ‘빼앗긴 조국, 그날의 함성’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인사와 마을 주민 등 600여 명이 참가한다. 1923년 연해주 우스리스크 거주 고려인 만세운동 10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빼앗긴 조국의 광복을 기원했던 고려인 선조들의 눈물과 한을 되돌아보기 위해 지난 2000년 대 초반 행사를 시작한 후 매년 개최해 왔다. 오전 10시 30분 마을 둘레길을 따라 만세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일본순사 복장의 오토바이부대와 민복을 입은 고려인마을 소녀들, 민족지도자 복장을 갖춰 입은 마을지도자들의 가장행렬에 이어 11시 고려인문화관 광장을 출발한 참여자들은 3.1절 노래와 함께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며 그날의 함성을 재연한다. 부대행사로 △독립선언서 낭독 및 손태극기 흔들며 만세삼창 △독립군가 합창 △홍범도공원 장군 흉상 앞 포토존 운영 △고려인마을 어린이합창단과 아리랑가무단 공연 △희망태극기 만들기 △고려인마을이 관광객 1000만시대를 꿈꾸며 조성한 특화거리 내 상가가 지원하는 리뾰시카(빵) 시식하기 △감사장 전달 등 다양한 행사도 예정돼 있다. 12시에는 고려인 미술 거장인 문빅토르 화백의 대표적 작품 50여 점을 전시하는 미술관 개관식도 열린다. 신조야 대표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지자 국내에서 활동하던 의병들은 연해주 지역으로 모여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이미 자리를 잡고 살아가던 최재형 선생과 연해주 거주 고려인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모여든 독립운동가들의 울타리가 되어 독립투사들에게 거사 자금과 식량, 병사 등을 제공했다"며" 빼앗긴 조국의 광복을 염원했던 독립운동 정신을 재현하는 행사"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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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이 전하는 연해주 고려인 학교의 흥망성쇠1937년 강제이주 이전까지 연해주 고려인 거주지에는 380여 개의 모국어 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연해주에 설립된 고려인 학교들은 그 수준으로 보나 그 숫자로 보나 한반도 전체에 존재했던 교육기관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 학교들은 거의 대부분 한일합병 이듬해인 1911년 이후 설립되었다. 권업회를 중심으로 한 여러 애국지사들이 후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그들을 올바른 지식으로 교양하기 위해 학교 건립에 매진한 결과였다.또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가 일반의무교육 시행을 선포함으로써 학교는 더욱 늘었다. 그동안 교육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가정의 부녀자들도 저녁에 문맹퇴치학교를 다녔다. 1928-1933년 사이에 존재했던 고려인 학교 숫자를 살펴보면 일급학교는 351개교에 학생 수 28,846명, 공장제조소 7년제 학교는 4개교 976명, 9년제 학교는 4개교에 학생 수가 700명, 집단농장 청년학교는 21개교에 3,073명으로 총학교는 380개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33,595명이었다. 그런데 이 통계는 원동(연해주) 교육부에 공식 등록된 학교와 학생 수만 합산한 것이다. 당시에 등록이 안된 학교, 비밀리에 운영된 학교도 적지 않아서 실제 수치는 이보나 훨씬 높았을 것이다. 1924년에는 고려인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인 우수리스크에 3년제 고려사범전문학교(고려인교육전문학교)가 설립되어 교원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1930년에는 뽀시에트에도 똑같은 사범전문학교가 설립되었다.1931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780명 정원에 역사학부, 문학부, 이학부, 생물학부 등 4개 학부로 구성된 고려사범대학교가 개교되었다. 이 사범대학교는 당대 명실상부한 고려인 최고의 학문기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유일의 우리 민족 사범대학교이기도 했다.이 학교 문학부 출신 다수는 졸업 후에 일반학교 교원으로 근무하거나 모국어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막 형성되기 시작한 고려인한글문단에 열성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들의 노고로 인해 수준 높은 모국어로 이룩한 고려인 한글문학은 소비에트 문화의 강력한 비바람 속에서도 오랫동안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삼일여학교 같은 기독교 계통의 학교들과 천도교, 대종교 계통의 학교들이 무수히 설립되어 활동했다. 이 학교들은 1920년대 연해주 일대 고려인 마을에 널리 번창했으나 무신론적인 사회주의 이념이 공고화되고 토호청산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지던 1920년대 말 1930년대 초에 탄압을 받아 모두 중령 만주로 넘어가거나 폐쇄되었다. 이 후 1991년 구 소련해체 후 중앙아 고려인들의 이주가 시작되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국내 귀환하는 동포들이 많아짐에 따라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동포를 중심으로 교육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마침내 2007년 동포 자녀를 위한 광주새날학교가 설립되어 연해주 모국어 학교의 정신을 가진 학교로써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출처: 고려인은 누구인가(2019) 김병학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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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 등 추천도서 3권 선정광주고려인마을은 2024년 추천 도서 3권을 발표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잊혀진 고려인 선조들의 삶을 들여 볼 수 있는 도서로 이 책들을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먼저 기록물 분야로 연해주 항일무장투쟁지도자 김경천 장군의 일기 ‘경천아일록’이다. ‘경천아일록 읽기’는 1920년대 연해주에서 전설적 항일무장투쟁지도자로 이름을 날린 김경천 장군이 쓴 국한문일기 ‘경천아일록’을 탈초하고 현대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번역한 것으로, 경천아일록과 김경천의 생애에 대한 소개, 경천아일록 현대어역본, 탈초본, 러시아어역본, 영인본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탈초와 현대 한국어역 및 전반적 해설은 김병학 광주 고려인문화관장이, 러시아어역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유 콘스탄틴 번역가가 진행했다. 이어 선정된 도서는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1.2권이다. 이 책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요된 재소 고려인들(카레이스키)의 강제이주 70주년을 맞아 펴낸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애환이 담긴 최초의 가요집이다. 책은 70여점의 희귀사진과 고려인들이 부른 노래 가사 출처에 대한 발굴, '선봉' '레닌기치' '고려일보' 등 지난 100년 동안의 고려인 신문에 실린 악보와 노래가사의 검색, 발굴, 재소, 고려인 작사자, 작곡자 등에 대한 최초의 연보 등이 기록돼 있다. 채록 및 편저자는 김병학 관장이며, 채보 및 편곡은 고려인 유명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한 야꼬브씨다. 그는 1943년 카자흐스탄 침켄트주(현재의 남카자흐스탄주)에서 출생. 1968년 침켄트 음대와 켄트국립사범대 무대지휘학과를 졸업하고 국립 《고려극장》 〈아리랑〉 협주단에 들어가 지휘자와 지휘단장을 역임했다. 세 번째 추천도서는 2019년 출간돼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던 ‘고려인은 누구인가’ 2022년 개정판이다. 개정판 ‘고려인은 누구인가’ 는 고려인 선조들이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전쟁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와 문화운동, 강제이주, 민족문화부흥 운동, 그리고 고려인을 품은 광주 등의 자료를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사진자료와 고려인동포들이 발행한 선봉신문, 레닌키치, 고려일보, 출판문학관련 도서 원본, 다양한 기록물 등 국내 처음 공개되는 자료들을 추가해 고려인의 잊혀진 항일독립전쟁의 역사와 문화, 생활사 등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 역시 고려인문화관 김병학 관장이 썼다. 저자인 김병학 관장은 1992년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우스토베 광주한글학교 교사, 알마티고려천산한글학교장, 아바이명칭 알마티국립대학교 한국어과 강사, 재소 고려인한글신문 고려일보 기자, 카작 한국문화센터 소장 등으로 일하다 2016년 귀국했다. 지금은 광주고려인마을 산하 월곡고려인문화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천산에 올라',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 등 다수의 시집과 번역서 ‘경천아일록 읽기’ 등이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즐겨 부르는 '고려아리랑'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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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고려인 화가 문 빅토르, 광주 고려인마을 정착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화가 문 빅토르(72)가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했다. 1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과 광주를 오가며 대한민국으로 이주를 준비해온 문 화백이 전날 고려인마을 안착을 마무리했다. 문 화백은 질환 치료를 위해 2022년 광주를 방문한 이후 재외동포(F-4) 비자 취득 등 고려인마을 영구 거주를 준비해왔다. 고려인마을도 조상의 땅 정착과 미술관 건립이라는 문 화백의 꿈을 돕고자 지난해 6월 모금 운동을 전개했다. 마을 지원센터 2층에 작은 전시실과 화실, 주거 공간을 마련해줬다. 고려인 3세로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던 문 빅토르는 스탈린 강제 이주 명령에 따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했다. 문 화백은 "고려인 선조의 강인한 민족정신과 불굴의 개척정신을 이어가도록 그동안 체득한 화법을 후손들에게 전수하겠다"고 말했다. 문 화백은 1951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바스토베에서 태어나 1975년 고골 알마티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197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술 활동을 시작한 그는 고려인의 역사, 문화, 인물을 화폭에 담아왔다. 대표작으로 '홍범도 장군', '우수리스크 나의 할아버지', '1937 고려인 강제 이주 열차'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카자흐스탄의 대통령궁과 국립미술관을 비롯해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집트,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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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현장 쫓은 김동우의 '뭉우리돌의 들녘''뭉우리돌의 들녘'(수오서재)의 저자 김동우는 러시아와 네덜란드에 남겨진 우리 독립운동의 자취를 찾아 나섰다. 2017년부터 국내와 독립운동 사적지와 독립운동가 후손을 취재해 온 저자가 러시아 연해주 소도시 크라스키노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비’, 연해주 우수리스크시에 있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가옥, 아무르주의 스보보드니 외곽의 자유시 참변추모비,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이준 열사 기념관 등을 답사한 기록을 정리했다.의병들이 본거지를 만들고 독립운동가들이 망명을 이어간 땅, 연해주. 그곳에 망국 앞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적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실제 모티프가 된 ‘15만 원 탈취 의거’도 연해주 일대를 배경으로 한다. 제목에 언급된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김구의 '백범일지'에서 비롯됐다. 김구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을 때 일본 순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말하며 그를 고문했다. 그 말에 김구는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했다. 작가는 김구의 말에서 착안하여 뭉우리돌처럼 굳건히 박혀 독립운동에 생을 바친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민초들은 독립운동가들의 무장을 위해 기꺼이 가락지와 비녀, 놋요강 등을 내어놓았고, 청산리, 봉오동 전투의 기반이 되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기에 한국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김알라 여사와 이인섭의 막내딸 스베틀라나 여사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도 들어 있다. 저자가 방문한 다양한 지역 가운데 러시아 연해주는 수백의 독립운동가들이 탄생하고 스러져간 땅이다. 한인들의 생존을 위한 땅이자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투쟁 본거지이자 최전선이 된 이곳에서 김동우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가옥을 찾아 나선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재력가이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등 역사 속에서 알려지지 않고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책은 국외 독립운동사적지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 사진작가의 지독한 분투기다. 김동우 작가가 사적지를 찾아 가장 많이 마주하는 것은 빈터다. 주소 한 줄에 의지해 어렵사리 사적지를 찾아가면 초라한 기념비만이 황망하게 서 있거나 그도 없이 황량한 빈터가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곳에서의 사진은 지워진 역사를 표현함과 동시에 지워져 가는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군가는 전 세계에 남은 민족의 흔적을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실패는 했어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분들이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오롯이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으면 역사는 잊힌다. 발걸음이 이어진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이자 기억하겠다는 의지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데에 작게나마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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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북놀이보존회장 이희춘, "다문화 청소년과 함께하는 진도북놀이"진도북놀이보존회는 다문화.결손가정.저소득층 청소년 대상으로 만든 초아반(초등학교 아이들반) 25명이 진도북춤 교육을 통하여 민족 정체성 확립과 전통음악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해오고 있다. 8년째 이어온 초아반 무료 강습을 해오고 있는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원들과 함께 빗기내민속전수관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오후반(기초반), 저녁반(완성반)을 나누어서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을 위해 회원들이 학생들을 자동차로 픽업을 해서 데리고 오고 있다. 그래서 가능한 일요일에는 외부 공연을 잡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초아반에서 진도북춤을 배운 다문화어린이들에게 민족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데 큰 역활을 해오고 있다. Q. 진도북놀이보존회 지난해 어떻게 보내셨어요. 개인적인 전승활동도 알려주세요 A. 진도 대표적 지역축제는 4월 세계적 주목을 받는 바다가 갈라지는 날 바다길을 가르는 '신비의 바닷길 축제'이다. 이날 거리축제의 꽃은 북퍼레이드이다. 이날 진도북놀이보존회가 일렬로 진을 꾸며서 '진도북춤'으로 신명을 울리고 신비의 바닷길을 안내한다. 특히 미국문화를 대표하는 맥도날드 광고에 진도북춤이 큰 역활을 했다. 진도대파 햄버거 홍보를 알리는 지상파 광고가 나가자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았다. ' 진도대파 진도북춤 타고 맥도날드 왔네' 그리고 지방무형문화재 '진도북놀이' 발표회. '진도북춤 명인 합동추모제' 등 보존회의 활발한 활동으로 진도북춤의 위상을 높였으며 회원간의 유대강화 및 지역 국악발전에 기여하였다고 본다. 축제 및 북놀이 보존회-신비의 바닷길 축제(2023.04.22.~24 회동 축제장) 맥도날드 광고 촬영(2023.05.08.~09.진도 창포리 마을) 진도대파 햄버거 맥도날드 광고 공연(2023.07.07.~09. 서울 여의도 ifc몰.맥도날드 매장 앞) 진도북놀이 박관용류 하계연수회(2023.08.28.~29. 무형문화재 전수관) 거리 북퍼레이드 200여명 참여. 3개 류 북놀이 합동공연 진도북놀이 체험 부스운영-명량대첩축제(2023.09.09. 녹진 대교 광장) KTV국민방송 30분 방영-영혼의 몸짓 촬영(2023.09.13. 세방낙조 전망대.운림산방.빗기내 민속전수관.목포 국악사 등) 3개류 지방발표회 각류 25여명 총 75명 참여-제3회 진도북 페스티벌(2023.11.03. 무형문화재 전수관 야외마당) 전국 북춤.북놀이 예술단체 11팀 초청 무형의 품격전 공연(2023.11.16. 보성문화원) 향토무형문화유산 발표회(2023.11.29. 무형문화재 전수관) 거리 북퍼레이드 230여명 참여.진도북놀이 체험 부스운영-지방발표회(2023.12.08. 삼별초 공원) 인도 전통북 연주단. 필리핀 전통음악단등 2팀 초청-합동추모공연(2023.12.09.무형문화재 전수관 강당) 개인적으로는 다문화 학생들과 특히 사할린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다. 매년 진도에는 연해주 고려인과 사할린 동포 청소년들이 국립남도국악원에서 한달동안 전통민속예술을 배우러 온다. 작년에 '진도북춤'을 배우러 온 사할린 학생들 14명과 지도교사들에게 진도를 상징하는 캐릭터(운림산방)가 들어간 티셔츠를 선물했다. 연말에는 국악신문 사할린장학회를 통해 사할린 청소년에게 장학금 후원도 했다. 그리고 3월 8일 여성의 날에 김포사할린동포회 초청공연을 위촉받았다. 동포들에게 전통문화 공연을 통해 민족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 Q. 진도북놀이보존회 단체 소개해 주세요 A. 1984년 진도북놀이보존회 창립,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지정되었고, 3개 류파로 나뉘어 전승되고 있으며, 박관용류는 김관우.이희춘으로 양태옥류는 박강열로 이어지고. 장성천류는 김길선.김병천으로 이어져 활발한 전승 보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회장 이희춘. 총무 노준영, 회원 80명 진도 거주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Q. 지난 해 성과 A. 코로나에서 벗어 났으나 그 여파로 축제 및 행사에 참여자가 적어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섯 분의 진도북춤 예능보유자 선생님 추모행사를 통해 다시한번 회원간에 유대와 화합을 다지는 계기가 되어 모든 회원들의 전승활동에 힘을 실어 주었다. 2005년 전수관에서 매일 일반인 40여 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해오고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수업을 해오고 있다. 제가 지은 반이름이 재미있다고 한다. 순수 진도 사투리인데,. 월요일(우하니 반) 화요일(무용반) 수요일(항꾼에 반), 목요반(만드리 반), 금요일(솔찬게 반), 토요반(오지게 반), 일요일(초아 반)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회둰들과 더 흥미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전통잇기를 하고 있다 Q.새해 역점 사업은 A. 4월 신비의 바닷길 축제에 이루어지는 진도 북퍼레이드는 관광객 참여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많은 관광객 그리고 외국인등 직접 참여하여 즐겁고 신명난 축제가 되도록 계획하고 있다. 첫째. 진도 북페스티벌은 전국 규모에서 온누리북페스티벌로 발전되도록 지자체와 협의 하여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둘째. 초등생 북춤 무료수업 확대하고자 한다. (매주 일요일. 빗기내민속전수관) 셋째. 다문화.결손가정.저소득층 청소년 대상으로 진도북춤 교육을 통하여 민족 정체성 확립과 전통음악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넷째. 진도북놀이에 대한 학술적 고찰을 중심으로 하는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Q.국악계에 하고 싶은 말 A. '국악진흥법' 통과를 자축하며, 오랫동안 힘써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다양한 지원 사업으로 국악융성시대를 기대하며, 전문 국악교사가 학교에 배치되어, 음악 교과서에 우리의 전통음악이 서양음악보다도 비중이 높아야 된다. 국악 조기 교육을 통해 자라나는 다음세대에게 우리 전통민속예술의 정체성을 알릴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악은 민족의 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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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화가 문빅토르, 고려인마을가족카페 전올가 대표 초상화 헌정세계적인 고려인화가 문빅토르 화백이 광주정착 고려인동포 정착에 헌신해 온 고려인마을 가족카페 전올가 대표 초상화를 그려 고려인마을에 헌정한다.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문빅토르 화백은 오는 1월 말 문을 열 예정인 문빅토르미술관 개관식에 맞춰 설립 기금을 후원한 전올가 대표 초상화를 일정기간 미술관에 전시한 후 전 대표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전올가 대표는 2013년 작은 식당을 개업한 후 고려인마을 특화거리 조성사업에 앞장 서 오늘날 전국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중앙아 전통음식문화거리로 발전시켜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려인마을이 광주이주 고려인동포들의 안정된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에 동참해 긴급의료비와 장학금,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동포 귀환 항공료 등을 후원해 왔다.뿐만 아니라, 지난 2022년 말 문빅토르 화백이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으나 후유증으로 고통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초청, 재수술을 받도록 긴급의료비도 지원했다.아울러 광주에 체류하는 동안 생활비에 이어 미술관 건립비 1500만원도 지원해 마침내 오는 1월 말 꿈에 그리던 문빅토르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문빅토르 화백은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첫 도착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 1951년 출생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살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이주명령에 따라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지역으로 이주했다.그는 1975년 알마티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7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7년 국립고려극장 주임미술가, 1983년 카자흐스탄 풍자잡지 '아라쉬멜' 주임미술가로 활동했다.그의 작품들은 카자흐스탄 대통령궁과 카자흐스탄 국립미술관을 비롯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집트, 일본, 러시아 등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대표작은 '1937 고려인 강제이주열차'와 '우수리스크 나의 할아버지', 인물화 '홍범도장군' 등 이다.특히 문 화백이 2017년 고려인 강제 이주 80주년을 맞아 고려인마을에 헌정한 그의 대표작 ‘1937 강제 이주열차’는 총을 든 소련군과 열차 안에 갇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고려인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시물탄 기법으로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는 명작 중에 명작이다. 이 작품은 현재 광주고려인마을 내 역사유물전시관인 고려인문화관 2층 전시실에서 전시돼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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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월곡고려인문화관, 최재형 유물·민속자료 보강 특별전광주 고려인마을 산하의 월곡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은 독립운동가이자 고려인 민족지도자였던 최재형 선생 관련 자료와 민속자료 등을 보강한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개관 2주년 기념 전시로 고려인 사회의 단합, 교육과 계몽, 독립운동, 의병 활동 등에 앞장섰던 최재형 선생 관련 유물과 설명자료 등을 추가해 새로 선보인다. 1937년 소련의 강제이주로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흩어진 고려인이 지켜온 전통문화와 음식문화를 소개한다. 특히 첫돌·혼인·환갑 등 통과의례와 설날·추석·제사 등 세시풍속 관련 사진과 서적 등을 모아 소개하는 전시실도 마련했다. 기존 전시 중인 희귀 사진자료도 일부 교체했으며, 문화관에 들어서면 고려인의 연해주 이주에서 시작하는 고려인 역사가 전개된다. 1863년 조선 땅에서 13가구가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로 이주한 이래로 1904년 320개 마을로 늘어난 정착지와 1912년 5만9천여명에 달했던 공식 이주민 숫자와 비공식 인구를 포함해 10만여명에 달했던 고려인 현황 등이 소개된 사진 자료 등도 선보인다. 특히 1937년 고려인강제이주 경로와 광주 고려인마을 형성과 현재, 미래를 조명하는 입구 부착물도 일부 개편했다. 문화관 입구에서 소개하던 고려인 강제이주 경로와 광주 고려인마을 역사를 소개하는 상설 전시관도 리모델링했다. 김병학 관장은 "국내에 정착한 고려인 차세대들에게 자기 뿌리를 알려주고 자긍심을 심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며 ""고려인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고려인 선조들의 잊혀진 역사를 되돌아 보는 공간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그리고 ,"유물을 계속 보강해 잊힌 고려인 역사 복원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1월에는 문빅토르미술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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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다음달 세계적인 고려인화가 문빅토르 미술관 개관광주고려인마을은 세계적인 고려인화가 문빅토르 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다. 5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준비 중인 미술관은 연면적 120㎡로 마을소유 건물 공간을 활용해 전시실과 화실, 손님방 등으로 구성된다. 또 교육실도 마련해 문 화백이 평생 간직해 온 화법을 후세대에 전승할 예정이다.문빅토르 미술관은 지난 2021년 5월 개관한 '고려인문화관' 에 이어 고려인선조들의 독립전쟁의 역사와 문화, 강제 이주사를 그림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마을공동체 역점사업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고려인마을을 다시 찾은 문빅토르 화백은 4일 광주예술의 거리를 방문, 미술관 운영에 필요한 그림 도구들을 돌아봤다. 아울러 신조야 대표를 비롯한 마을 지도자들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 전시 방법 등에 관한 의견도 나눴다.고려인마을은 개관일로 정한 1월이 다가옴에 따라 문 화가와 지역예술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미술관 공간의 효율적인 운영과 명칭 등에 대한 밑그림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문빅토르 화백은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첫 도착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 1951년 출생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살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이주명령에 따라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지역으로 이주했다.그는 1975년 알마티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7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7년 국립고려극장 주임미술가, 1983년 카자흐스탄 풍자잡지 '아라쉬멜' 주임미술가로 활동했다. 1985년부터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라트비아, 한국, 일본 등에서 개인전을, 2017년 카자흐스탄 국립미술관 초대전을 가졌다. 2017년 고려인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광주에서 '아픈 기억 꿈꾸는 희망'이라는 초대전을 가졌다.그의 작품은 카자흐스탄 대통령궁과 카자흐스탄 국립미술관을 비롯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집트, 일본, 러시아 등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대표작은 '1937 고려인 강제이주열차'와 '우수리스크 나의 할아버지', 인물화 '홍범도장군' 등 이다.고려인마을은 문빅토르 화백이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무릎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후 수술 후유증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지난해 11월 문 화백을 광주로 초청해 치료비와 체재비 일체를 지원하며 도움의 손길을 펼쳤다. 감동을 받은 문 화백은 광주에 정착해 자신의 화법을 미래 세대에 전승하고, 미술관을 통해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 문화예술 교류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고려인마을이 미술관 건립 모금운동에 나서 1800여 만원을 모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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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어린이합창단, 강원 정선에서 ‘고려아리랑’ 메아리일제강점기 피어린 삶 속에 개척한 자신들의 땅을 모두 빼앗긴 후 1937년 중앙아사이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동포들의 애환이 담긴 ‘고려아리랑’ 이 오는 5일 ‘아리랑의 고장’인 강원 정선에서 불려졌다. 이날 공연에는 광주고려인마을에 거주하는 고려인동포 자녀 25명으로 구성된 어린이합창단 (단장 조정희 교수)이 초청을 받아 무대에 서 고려인의 피어린 삶이 묻어나는 ‘고려아리랑’ 을 불렀다.‘ 고려아리랑’ 은 광주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 김병학 관장이 작사하고 카자흐스탄의 대표적인 고려인 작곡가 한 야꼬브(1943-2021)이 작곡한 노래로 2015년 광복절 제70주년을 맞아 초연한 노래다. 중앙아시아 거주 고려인 동포들은 고향 산천이 그리울 땐 아리랑을 불렀다. 하지만 누군가 말하길 조국엔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등 수 많은 아리랑이 있는데 ‘왜 고려인의 아리랑은 없느냐’ 는 질문에 김병학 관장이 노랫말을 짓고 당시 고려극장 예술 감독이며 지휘자인 한 야꼬브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이제는 전 세계 디아스포라 고려인동포 50만 명이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다. 유튜브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고려아리랑'의 가사는 이렇다. 1절 원동땅(연해주) 불술기(증기기관차)에 실려서 카작스탄, 중아시아, 러시아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도 우리는 한민족 고려사람. 2절 진펄도 갈밭도 소금밭도 땀 흘려 일구니 푸른 옥토 모진 고난 이기고 일어서니 우리는 한민족 고려사람. 3절 아버님 남기신 선조의 얼 어머님 물려준 조상의 말 가꾸고 다듬고 지키리라 우리는 한겨레 고려사람.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고려 고려 아리랑 노랫말을 따라 불러보면 일제강점기와 강제이주 등 고난의 삶을 살아 온 고려인의 피어린 삶이 되살아나며 눈가에 눈물이 묻어나게 만든다.광주고려인마을은 "이번 초청공연을 통해 일제강점기 독립전쟁에 헌신한 고려인 선조들의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고, 고려인의 피어린 삶을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고 밝혔다. 한편, 4∼8일 정선아리랑센터와 경기 가평 청리움, 서울 서초구 정효아트센터에서 정효문화재단 등 4개 단체가 주최하고 동아일보사 등 9개 단체가 후원한 제5차 세계한민족공연예술축제 ‘한인화락’ 공연에는 광주 고려인마을을 비롯한 총 8개국 연주자 120여 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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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 부부 합장 기념 음악회 성료독립운동가 故 최재형 선생 부부의 103년만의 합장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렸다.(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는 11월 17일 저녁 7시부터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에서 ‘최재형부부 합장 기념 후원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번 음악회에는 용산구청과 마론윈드 오케스트라가 힘을 보탰다.앞서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서 ‘백 년 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란 슬로건 아래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 부부의 합장식이 거행됐다. 부부는 지난 1920년 최 선생 서거 이후 103년 만에 함께 영면에 들었다.마론윈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진행되는 음악회는 ▲최재형 선생 생애 영상 ▲최재형 선생님(베이스/바리톤 윤종민) ▲백학(배우 황건) ▲최재형 / 태극기(역사어린이합창단) ▲향수 (윤종민·황건) ▲독도는 우리 땅 ▲기념사업회 소개 및 감사패 증정 ▲아리랑 (Arirang) ▲용산 (Mountain of Dragon) ▲Auld Lang Syne(윤종민·황건·역사어린이합창단) 순서로 이어졌다. 문영숙 (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장은 "올해로 창단25주년을 맞은. 마론윈드 오케스트라도 재능기부로 웅장한 무대를 만들어 주었고 베이스바리톤 윤종민교수님 배우황건님도 재능기부 출연으로 감동을 주었다. 특히 윤종민교수의 최재형선생님 노래는 장중한 연주와 함께 더욱 빛났고 황건배우의 백학은 러시아독립운동을 상기시켜 주었다. 듀엣으로 두분이 부른 향수는 당시 고향과 조국을 떠나 일제와 싸우셨던 선열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짐작해보는 시간이었다.다음에는 최재형 장군의 의병정신을 주제로 한 무대를 올리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음악회 무대밖에서는 24개의 액자로 최재형사료와 사업회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도 함께 하여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는 국민모금액을 최재형묘 복원 사진집을 발간해 오시는 분들께 전달했고, 그동안 최재형기념사업회를 후원해준 기업. 한국파마.아시아발전재단 조남철상임이사. 면사랑 정세장 사장님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또한 최엘레나 여사를 국내로 모셔오는데 큰힘을 실어준 엘지 유플러스와 손정일교수님에게도 감사패를 전달했다 최재형 선생은 아홉 살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조국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사용했다.러일 전쟁 이후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총재가 되어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대동공보(大東共報)를 인수해 재창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게재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과 한인사회에 대한 기여로 '시베리아 페치카'라고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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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소리극 ‘구국의병장 허위’에서 의병정신 기린다."피고, 허위! 죄인이 감히, 대일본제국에게 저지른 불경한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주겠다. 1896년 의병을 모아 대일본제국을 공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1907년부터 ‘연합의병창의군’이라는 불순단체를 결성해 대일본제국에 총과 칼을 겨누어 많은 죄를 저지른 대역죄인이다 피고, 의병을 일으키게 한 것은 누구이며 대장은 누구입니까?"(일본 재판관) "의병이 일어나게 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이며, 대장은 바로 나다. 이토가 우리나라를 뒤집어 놓지 않았다면, 의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한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왕산 허위) 대일항쟁기 구미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의병장의 뜨거운 의병운동이 소리극으로 부활된다. 그가 돌아와서 의병들과 함께 '의병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서울로 진격한다. 진격!! 1일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임규익) 주최 주관으로 개최되는 제15회 구미의병아리랑제가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오후 2시에 개최된다. 배경숙 예술감독의 연출로 소리극 ‘구국의병장 허위’가 무대에 오른다. 1부에서는 '저항의 노래', 2부에서는 '승리의 노래'로 구성되어, 의병정신이 발현되는 과정과 영남인의 심성이 담긴 영남전래민요집에서 채록된 영남의 민요와 아리랑이 극의 단막과 어울어져 허위장군의 붉은 애국심을 펼친다. 구한말 대법원장을 지내고 전국 의병을 총지휘하여 서울 진격작전을 지휘했던 13도 창의군 대장 허위는 서대문형무소 첫 번째 사형수로 1908년 10월 21일 정오, 경성감옥의 교수대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당시 왕산의 나이 54세였다. 교수대에서 일본 헌병사령관도 그의 당당한 기개에 고개를 숙였다고 알려졌다. 소리극에서 허위 장군의 13년 의병투쟁을 구미의병아리랑에 담아서 허위장군의 의병정신을 기린다. 왕산의병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어얼싸 아라리야(후렴) 1. 여봐라 우리네 대장군나셨다 13도 창의대진 군사장이시다 2. 노래하라 외쳐라 우리네 의병장 기린다 우리는 왕산허위대장군 3. 나시니 구미땅 임은동이요 서시니 경술년 30조 호령이다 4. 오얏꽃 날리는 3월이 오면 밤새도록 노래하라 그립다하여라 5. 역사는 기린다 왕산허위장군 산하가 외친다 너는 아냐고 6. 13도 넘어서 이역 만주 땅까지 창의하여 거병하니 세상이 들썩 극중 등장인물은 허위, 허훈, 허경, 이기찬, 아카시(일본 헌병사령관) 5인과 보존회 30여 명이 민중들로 나와서 구미의병아리랑, 구미아리랑, 영남민요 10여 곡을 소리극으로 올린다. 한편 올해 왕산 허위 선생 115주년 추모제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15일 광복절에는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가 서울 왕산로, 남인사마당, 광화문,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차례로 순회하면서 '아리랑버스킹' 공연에서 왕산허위 장군을 기리는 '왕산의병아리랑'을 널리 알렸다. 임규익 회장은 내년에도 왕산로와 광화문 광장에서 왕산의병아리랑을 알리겠다고 전했다. 특히 사할린 동포 인무학 교수(모스크바 대학)에 의하면 "왕산 허위 손자 허진 선생은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극작가로 일하면서, 허위 장군의 의병활동을 고려인들에게도 널리 알렸다. 당시 많은 의병들이 서울 진격 작전을 실패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했다."라고 전한다. 당시 유관순 의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허위 의병장은 구미에서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와 자손들이 국외로 이주하여서, 의병활동 중에 이름도 없이 산화한 의병들의 존재 기록이 아직도 파악이 안되고 있다. 의병운동의 자취를 발굴하고 복원시키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본다. 구미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얼씨구 노다가세 노다가(후렴) 금오산 참꽃은 다시 또 피련마는/나를 버리고 가신님은 언제나 오려나 왕산의 충절과 용맹의 기상은/내 고향 구미의 자랑이라 2005년 배경숙의 '구미아리랑' 발표 후 창립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는 2009년부터 경상북도과 구미시 후원으로 매년 구미아리랑제 개최, 2018년 이후는 허위의병장을 기리는 구미미의병아리랑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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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문빅토르미술관’ 개관 모금운동카자흐스탄 대표화가이자 고려인 3세인 문빅토르(72) 화가의 미술관 개관을 위한 모금운동이 펼쳐진다. 고려인의 정체성과 역사를 작품에 담아온 고려인 작가의 미술관이 광주에 생길 전망이다.광주고려인마을은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와 인물을 독특한 필치로 오랫동안 화폭에 그려온 세계적인 화가인 문 화가의 고려인마을 내 미술관 개관을 위해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십시일반 모금운동을 전개한다고 13일 밝혔다. 또한 고려인마을은 미술관 개관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문화가가 소장 중인 그림을 매입해 줄 국내 독지가도 찾아 나설 예정이다. 목표 금액은 9억원, 기간은 7월 30일까지다.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무릎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문 화가가 수술 후유증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지난해 11월 고려인마을은 문 화가를 광주로 초청, 치료비와 체재비 일체를 지원하며 도움의 손길을 펼쳤다. 현재 마을에 머물며 회복 중인 문 화가가 광주에 정착, 그림을 그리며 후손을 양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고려인마을은 지자체의 협조를 받아 미술관 개관을 추진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진행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마을 자체 모금운동으로 전환해 미술관 건립에 나섰다.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다양한 유라시아문화가 공존하는 아시아문화마을로 고려인마을이 발전함에 따라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한축으로서 그 위상을 높혀가기 위한 ‘문빅토르 미술관’ 은 꼭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마을 지도자들의 의견을 모아 추진위를 결성, 모금운동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월곡-유라시아를 잇는 예술로드를 발굴하고, 중앙아시아 문화예술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추진해 미술관을 중심으로 광주 문화예술계 레지던스 사업들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문 화가는 카자흐스탄 고려인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와 인물을 독특한 필치로 오랫동안 화폭에 그려온 유일한 화가다.그는 1997년 고려인 강제이주 60주년을 맞이해 최초로 고려인화가 단체전을 조직, 주도하였으며 카자흐스탄, 한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단체전과 개인전을 열어 독특한 화법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2000년 이후 그는 인체 메커니즘과 사회의 다양한 작동방식을 밝은 색상의 점묘법과 큐비즘으로 표현하는 기법을 발달시켜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또 연이은 강제이주열차 작품 시리즈와 항일독립운동의 영웅 홍범도 초상화 등과 같은 인물화를 꾸준히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고려인의 정체성과 내면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고도로 심화,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려인마을 내 고려인문화관에 전시돼 있는 ‘1937 강제이주열차 ’(2017년)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문 화가가 조상들께 헌정한 작품으로 문 빅토르 화가의 기술적 원숙함과 고려인의 정체성에 대한 사유가 절정에 이른 작품이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 태어난 문 작가는 1975년 알마티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1976년부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985년부터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라트비아, 한국, 일본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1997년 고려인 강제이주 6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고려인화가 단체전을 주도하기도 했다. 문빅토르 화백이 내놓은 작품 '우수리스크의 우리 할아버지' 는 한국-카자흐스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2022년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주한 카자흐스탄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한-카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전’의 "와싹와싹 자라게" 공간에 전시된 작품이다. 전시 기간은 2022년 6월 30일부터 8월 25일까지였다.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은 이 전시를 위하여 카자흐스탄의 모든 고려인 화가들의 작품 중에서 문 빅토르 화백의 작품 2점만을 선정하여 이 특별전에 전시했다. 2점의 작품은 바로 '홍범도 장군 초상화'와 '우수리스크의 우리 할아버지'이다.'우수리스크의 우리 할아버지'는 1910년대 초반 한반도에서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이주한 문 빅토르 화백의 조부를 상상하며 그린 작품이다. 여기에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지만,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던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다.온통 러시아식으로 펼쳐진 배경 앞에서 위풍당당하게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활보하는 모습은 한민족의 자랑스런 민족정신과 기상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문 빅토르 화백은 자신에게 민족의 얼과 혼을 물려준 조상들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 인물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 온 대표적인 고려인 화가다.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은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고려인화가 문빅토르 화백의 꿈인 미술관 건립을 지원할 독지가나 기업후원자를 찾는다고 10일 밝혔다.후원방법은 문 화백의 소장 그림인 '우수리스크의 우리 할아버지'를 4억원에 매입해 주는 것이다. 이 금액은 고려인마을 내 미술관 개관을 위한 주택 구입비다. 고려인마을은 먼저 예정부지의 주택을 매입한 후 리모델링을 통해 내년 1월 미술관 개관식을 갖는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고려인마을은 문 화백이 내놓은 그의 그림 '우수리스크의 우리 할아버지'의 시장가에 앞서 마음이 따뜻한 후원자의 매입을 통해 미술관을 건립된다는 사실에 중요성을 둬달라고 간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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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삼일절 연해주 ‘삼일만세운동기념대회’ 재연행사역사마을1번지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은 삼일절 104주년을 맞아 1923년 3월 1일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열렸던 ‘삼일만세운동제4회기념대회’를 재연한다.‘삼일만세운동제4회기념대회’는 일제강점기 빼앗긴 조국의 봄을 기원하며 연해주 거주 고려인동포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1919년 3.1만세운동 4주년을 기념한 행사였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지자 국내에서 활동하던 의병들은 연해주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 그 활동을 넓혔다. 그리고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에는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연해주에 모여 독립운동을 시작했다.당시 이미 자리를 잡고 살아가던 연해주 거주 고려인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모여든 독립운동가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갖고 투쟁하는 독립투사들에게 거사 자금과 식량, 병사 등을 제공했다. 이는 우리 민족의 항일독립전쟁의 역사에 잊어서는 안될 소중한 기록이며 자산이기에 광주고려인마을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계획하고 진행할 예정이다.오는 3월 1일 오후 2시 고려인마을 중앙에 위치한 홍범도공원에서 펼쳐지는 이번 행사에는 3.1독립유공자유족회와 민족대표 33인유족회, 한말호남의병기념사업회 등 국내외 시민사회단체 104개가 참여한다.아울러, 대한민국 국민들로 구성된 신민족 대표 33인이 한민족공동체의 번영된 미래를 향한 비전을 선포한다. 고려인마을극단1937과 고려인마을 거주 동포 200여명이 펼쳐내는 ‘그날 우리는’ 기념퍼포먼스와 ‘고려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전시회’ 개소식도 함께 열린다.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연해주 거주 고려인은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의 피어린 투쟁이 이어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한 자랑스런 선조들이었다” 며 "이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한 이번 행사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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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항일무장투쟁의 별’ 김경천 장군 연보 국내 최초 정리광주고려인마을은 국내외 최초로 ‘항일무장투쟁의 별’ 김경천 장군의 연보를 정리해 발간했다고 27일 밝혔다.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이번 정리된 김경천 장군의 연보는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의 수년간 노력으로 이루어졌다.현재 고려인문화관은 일제강점기 독립전쟁에 헌신한 고려인선조들의 역사와 문화, 생활사, 한글문학, 고려일보 신문자료, 고려극장 사진첩 등 1만2천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에 고려인마을은 지난 2020년 10월 관광객 천만시대를 꿈꾸며 ‘역사마을1번지’ 선포식을 갖고 관광객을 맞이하자 매년 고려인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김병학 관장은 "고려인 선조들의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작업 중 하나로 김경천 장군의 연보를 정리해 발간했다” 며 "국내 귀환 독립투사 후손 고려인동포들의 자긍심 고취를 위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겠다" 고 밝혔다. 아울러 고려인마을은 오는 30일 오후 2시 일제 강점기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여 수많은 전과를 올렸던 김경천 장군의 항일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특별전 및 기념세미나’ 를 개최할 예정이다.이번에 국내 최초로 정리된 김경천 장군의 연보는 다음과 같다.김경천(金擎天) 연보 1888년 6월 5일 : 함경남도 북청군 서문 밖에서 부친 김정우와 모친 윤옥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95년 가을 (8세) : 부친 김정우가 조상 대대로 살던 고향을 떠나 가솔을 데리고 서울로 이주했다. 그는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학현리에 농장을 매입하여 거주지를 정하고 맏아들 성은(成殷)을 데리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899년 가을 (11세) : 모친 윤옥련(尹玉聯)이 사망했다. 경천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낫게 할 약을 구하고자 어른도 건너기 힘든 강을 건넜고 이에 동네 어른들이 북청에서 온 아이가 강하다고 칭찬하였다. 1900년 여름 (12세) : 부친 김정우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한제국 육군군기창장으로 재임했다. 아버지와 함께 유학하고 돌아온 형 성은은 대한제국의 유일한 공병장교가 되어 공병대를 설립하고 육군공병부령으로 재임했다. 1903년 (15세) : 경성학당을 졸업했다. 1904년 (16세) :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육군중앙유년학교에 입학했다. 1907년 (19세) : 형 성은이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08년 2월 6일 (20세) : 부친 김정우가 53세의 나이로 서울에서 사망했다.1908년 6월 8일 (20세) : 여동생 옥진(玉振)이 유복녀로 태어났다. 옥진은 1930년에 경성고등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남광준(南迋駿)에게 출가했다.1910년 6월 (22세) :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동경 목흑기병 제일연대부에서 재직했다. 이 시기에 오랜만에 환국하여 유정화(柳貞和)와 혼인을 치렀다.1913년 1월 (25세) : 가족을 데리고 일본 동경으로 이주하였다. 1915년 (27세) : 6월에 장녀 지리(智理)가 태어났다. 9월에 기병 소위에서 기병 중위로 승진했다. 1917년 2월 (29세) : 차녀 지혜(智慧)가 태어났다. 1919년 (31세) : 유럽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국내와 해외에서 혁명의 분위기가 점차 증가되는 것을 보고 동경연대에서 휴가를 얻어 1919년 1월 서울 사저로 돌아와 삼일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4월에 삼녀 지란(智蘭)이 태어났다. 1919년 6월 6일 (31세) : 3.1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한 뒤 해외에서 무장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후배 지청천과 함께 비밀리에 서울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로 망명했다. 1919년 6~9월 (31세) : 간도의 신흥무관학교에서 일본육군사관학교 후배 지청천, 대한제국 경성무관학교 2회 출신 신팔균(신동천)과 함께 독립군을 양성했다. 사람들은 김경천, 지청천, 신동천 이 세 사람을 ‘남만삼천’이라고 일컬었다.1919년 9월 (31세) : 무장투쟁에 필요한 무기구입 문제로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무력투쟁을 준비했다. 1920년 (32세) : 수청지역에 수시로 출몰하여 우리 유민들을 괴롭히는 마적들을 잇따라 소탕했다. 그해 5월 18일에는 부족한 인원과 빈약한 무기로,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잘 무장한 채 한인마을을 약탈하고 방화하던 마적 300여 명을 일거에 소탕하였다. 이를 계기로 김경천의 이름이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1920년 9~10월 (32세) : 간도에 있는 무관학교 교관으로 초청받아 가던 중 일본군이 간도로 들어가 도처에서 한인과 독립군들을 학살하고 추격해오므로 부득불 연해주로 되돌아갔다. 1920년 후반(또는 1921년 초) (32(33)세) : 마적토벌 후 수청지역에 군정을 단행하고 군정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인은 물론 중국인과 러시아인까지도 김경천의 증명서를 받아야 수비구역 바깥으로 출입할 수 있었다. 러시아식 교육제도를 전폐하고 아동을 모국어로 교육하게 하는 등 여러 제도를 개혁하였다. 1921년 4월 (33세) : 수청고려의병대 총사령관이 되었다. 한창걸의 고려로농군회와 강국모의 혈성단이 연합하여 수청고려의병대를 만들고 김경천을 초청해 사관 양성과 군무를 맡겼기 때문이다. 연해주에서 사관 양성 교육은 오직 김경천만이 할 수 있었다. 이로써 부대의 전투력이 크게 향상되어 실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1921년 10월~1922년 6월 (33~34세) : 러시아 적백내전에 참가하여 일본군의 지원을 받고 쳐들어오는 백군과 무수한 전투를 벌였다. 1921년 12월 (33세) : 러시아 적군 부대와 연합하여 도병하에서 백군과 전쟁을 치렀으나 적군 부대 대대장이 부대원들과 함께 백군에 항복하여 부득불 전세가 밀리게 되었다. 그때 항복하지 않은 적군 부대원 중 100여 명이 김경천 부대로 들어옴으로써 김경천은 고려인-러시아인 연합부대 총사령관이 되어 전쟁을 지휘했다. 1922년 1월 (34세) : 인원이 채 50명도 안 되는 부대원으로 야간에 이만시를 습격하여 백군 300여 명을 물리쳤다. 그러나 날이 밝자 백군 수백 명이 총공격해오므로 퇴각하였다. 1922년 6월 (34세) : 연해주에서 철병하는 일본군과 이를 따라 퇴각하는 백군 사이의 허리를 끊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1922년 여름 (34세) : 연해주 빨치산부대 혁명군사위원회로부터 뽀시예트 및 훈춘 구역 빨치산부대 총사령관으로 임명받았다. 1922년 가을 (34세) : 수청으로 돌아가 군사학 서적 번역에 착수하였다. 1923년 (35세) : 상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1925년 봄 (37세) : 서울에서 아내 유정화가 세 딸을 데리고 연해주로 들어왔다. 1926년 봄 (38세) : 수청 서개척리로 이주해 2년 가까이 거주했다. 1926년 9월에 장자 수범(秀凡)이 태어났다. 1927년 12월 (39세) : 영주할 목적으로 수청 해안 난채시로 이사 가서 한적하게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내전이 끝난 1922년 말부터 이 시기 사이에 김경천은 ‘나제즈다(희망)’라는 이름의 협동농장을 건설하고 조합원들을 지도했다. 1929년 1월 (41세) : 사녀 지희(智姬)가 태어났다. 1932년 3월 (44세) : 하바롭스크시 합동국가보안국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함으로써 다시 사회의 중심부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소수민족부서에서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통역으로 일했다. 7월에 차자 기범(奇凡)이 태어났다.1934년경 (46세) :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고려사범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사하였다. 그는 거기서 일본어와 군사학을 가르쳤다. 김경천의 가족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강제이주 직전까지 살았다. 1936년 가을 (48세) : 소비에트 당국에 전격 체포되어 같은 해 9월 29일 연해주 국경수비대 군법회의에서 3년 금고형(자유박탈형)을 선고받았다. 김경천 가정에 시작된 비극의 서곡이었다. 1937년 여름 (49세) : 둘째 딸 지혜가 식중독으로 갑자기 사망했다.1937년 늦가을 (49세) : 가족들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까라간다로 강제이주를 당했다.1939년 2월 4일 (51세) : 2년 반을 복역하고 석방되었다. 그는 강제이주를 당한 가족을 찾아 3월에 카자흐스탄 까라간다 집으로 들어갔다. 가족과 재회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까라간다 주 뗄만 구역 독일인 농장 코민테른 꼴호즈에서 농장작업부로 일을 시작했다.1939년 4월 5일 (51세) : 한 달 만에 다시 체포되어 까라간다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 여름 더위가 시작되던 6월 25일에 그는 모스크바 부띄르스꼬이(Бутырской) 감옥으로 이감되었고 그해 12월 17일에 재판을 받았다. 재판부는 그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여 강제노동수용소 수감 8년을 언도했다. 재판이 끝나자 당국은 그를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꼬틀라스(Котласс) 시 감옥분소로 옮겼다가 1940년 1월 17일에 러시아의 북부에 있는 꼬미 자치공화국 내무인민위원회 세브젤도를라그(Севжелдорлаг. 북부철도수용소)로 이송했다. 수용소 명칭이 말해주듯이 거기에 수감된 죄수들은 매일 철도건설공사장에 동원되었다. 1942년 1월 14일 (54세) : 러시아 북부 꼬미 자치공화국 내무인민위원회 북부철도수용소 부설 병원에서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수용소에서 800m 떨어진 지점에 묻혔다. 그의 사망 일자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관계당국에서 내준 증명서마다 달리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는 1월 2일로 알려져 있고 카자흐스탄 측에서 2008년에 내준 자료에는 1월 26일로 적혀있으나 김경천이 마지막 숨을 거둔 수용소가 있었던 꼬미 자치공화국에서 내준 증명서에는 1월 14일로 나와 있다. 꼬미 자치공화국 측 증명서가 사실에 가장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1971년 6월 13일 : 김경천의 아내 유정화(1892년 5월생)가 79세로 사망했다.-------------------------------1956년 : 1936년에 김경천이 체포되어 3년 금고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재심되어 무죄선고가 내려졌다. 1959년 2월 16일 : 모스크바 군관구 군사재판소는 김경천이 1939년에 체포되어 그해 12월 17일에 간첩죄로 8년 형을 선고받은 사건을 재심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다음날 17일에 사후복권 시켰다.1993년 4월 14일 : 카자흐스탄은 1993년 4월 14일에 선포한 ‘정치적 탄압에 의한 희생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김경천의 명예를 회복시켰다.1998년 8월 15일 : 대한민국 정부는 김경천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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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광주고려인마을, ‘항일무장투쟁의 별’ 김경천 장군 세미나광주고려인마을은 대일항쟁기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여 수많은 전과를 올렸던 김경천 장군의 항일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특별전 및 기념세미나’ 를 개최한다. 고려인마을은 지난 15일 광복절 제78주년을 맞아 마을축제를 통한 국가의 소중함을 교육하기 위한 방안으로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전투 재현 행사’ 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어 오는 30일 오후 2시에는 항일무장투쟁의 별 김경천 장군의 고귀한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후손에게는 국가의 소중함을 교육할 김경천 장군 특별전과 세미나를 개최한다. 김순흥 전 광주대 교수의 사회로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의 ‘신흥무관학교와 남만산천’의 발제에 이어 김 장군의 증손녀 김올가씨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는 증언과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의 ‘경천아일록과 김경천의 생애’ 가 발표된다. 한편 고려인마을은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세미나 참석자들을 위한 기념품도 준비했다. 기념품은 김경천 장군이 전투 중 기록한 일기를 책으로 편찬한 ‘경천아일록 영인본’(월곡고려인문화관, 민족문제연구소광주지부 공동편찬)이다.‘경천아일록’ 은 김 장군이 전쟁 중 쓴 기록물과 회고록을 일기 형식으로 남긴 저서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버금가는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김 장군은 일제 강점기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여 수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백마탄 장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때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전설적인 김 장군으로 연해주 일대에 널리 알려지자 김일성이 그의 명성을 이용함에 따라 ‘김일성 가짜설’의 증거로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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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김경천 장군 일기 ‘경천아일록’ 영인본 출간오는 30일 오후 2시 일제 강점기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여 수많은 전과를 올렸던 김경천 장군의 항일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특별전 및 기념세미나’를 개최하기에 앞서 고려인마을은 김 장군이 직접 쓴 일기를 영인본으로 엮어 출간했다. 26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고려인마을출판사가 발행한 김 장군이 쓴 ‘경천아일록’ 은 망명길에 들어선 1919년 6월부터 1925년까지, 연해주 일대에서 전개된 숨가쁜 전투 가운데, 또 전투 전후의 잠시 평온한 일상 속에서,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며 장군이 걸어온 행적과 그가 품은 원대한 뜻을 틈틈이 기록한 일기다. 김경천 장군은 노령 연해주에서 영웅적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전설적인 항일의병장이다. 그는 청년 시절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제국주의 일본에 복무한 바 있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일에 헌신 종사할 기회만 엿보다가 마침내 1919년 만주와 연해주로 망명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관되게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았다. 그는 연해주에서 항일전투에 임할 때마다 늘 부하들에게 참군인의 모범을 보여주었으며 뛰어난 지략과 통솔력으로 혁혁한 승리를 거두어 연해주 일대에서 ‘백마 탄 김장군’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때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전설적인 김 장군으로 연해주 일대에 널리 알려지자 김일성이 그의 명성을 이용함에 따라 ‘김일성 가짜설’의 증거로 인용되고 있다. 더욱 감사하게도 김경천 장군은 우리에게 더없이 값지고 소중한 기록물을 남겼다. 국권을 상실한 당시 조국의 상황이 때로는 불리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장군은 조국 독립에 대한 희망의 끈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조국독립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글을 기록해 남겨둠으로써 오늘날 후손들이 읽을 수 있는 ‘경천아일록’ 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김경천 장군의 일기 ‘경천아일록’은 뜻밖의 수난을 겪었다. 이 일기는 1936년 김 장군이 스탈린 정권의 탄압을 받아 수감될 때 소련 당국에 압수되었다가 2005년에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김 장군의 일기가 오래전에 종적을 감춰버렸던 탓에 2005년 이전까지는 가족들조차도 ‘경천아일록’ 의 존재 그 자체조차 모르고 있었다. 근 70년 만에 김경천 장군의 일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김 장군의 생애와 그분이 품은 이상과 헌신의 삶을 비로소 알 수 있게 됐다. 김 장군의 고귀한 민족정신과 조국애를 후손들에게 더 많이 알리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김순흥 교수가 나서 출판비를 지원함에 따라 김 장군의 ‘경천아일록’이 마침내 영인본으로 출판되어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기록물은 조국의 자주와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늘 깨어있게 만들고 동시에 아직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마냥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2019년 김 장군의 일기를 국내 최초로 현대한국어와 러시아어로 번역 출판했던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은 "‘경천아일록’은 누구에게는 준엄한 꾸짖음이 될 것이고, 누구에게는 등짝을 후려치는 죽비가 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삶의 지침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조상들이 피로 새긴 역사를 잊지 않게 해줄 소중한 정신이 될 것이다.”고 책 서문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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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고려인역사문화배우기’ 탐방행렬 이어져‘역사마을1번지’로서 광주고려인마을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는 가운데 방학을 맞은 관내 초.중.고 학생들의 ‘고려인역사문화배우기’ 탐방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지구촌지역아동센터와 풍성한지역아동센터, 에덴지역아동센터 이용 어린이와 보육교사 등 82명이 참여해 광주이주 독립투사 후손 고려인동포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잊혀진 역사를 배웠다. 광주 서구 풍암동 지사협(위원장 신수현)이 주관한 이날 행사는 먼저 고려인문화관을 들러 고려인의 초기 연해주 이주 역사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1991년 소련 해체 후 유랑민으로 전락한 고려인의 고난의 삶, 그리고 광주 고려인마을 형성과 성장, 향후 발전 방향이 담긴 동영상 시청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둘레길을 따라 고려인광주진료소, 지역아동센터, 종합지원센터, 어린이집, 방송국, 홍범도장군 흉상이 자리 잡은 홍범도공원을 돌아본 후 고려인마을 특화거리를 방문해 중앙아시아 전통음식문화도 체험했다. 탐방행사 참여자들은 "고려인에 관한 동영상을 보고 관련 유물들을 돌아보는 탐방행사가 매우 흥미로 왔다. 특히 고려인마을식당에서 먹는 빵과 음식은 매우 맛이 있어 좋았다. 광복절 봉오동전투 재현 행사 소식도 들었다” 며 "아동들과 함께 참여해 몸으로 체험하는 역사를 배우고 싶다” 고 말했다. 한편, 지난 7월 말 본격적인 여름 방학에 들어선 이후 고려인마을을 찾은 관광객과 탐방객은 단체와 개인 등 수 천명에 이르고 있다.이와 같은 성과는 관광객 유치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안정된 조기정착을 지원하려는 마을지도자들과 월곡2동 선주민들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이다. 마을지도자들은 다양한 행사와 축제를 조직해 진행하고, 월곡2동 선주민들로 구성된 마을해설사들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안내는 물론 편의를 제공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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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광주고려인마을, 김경천 장군 특별전 및 기념세미나 개최광주고려인마을은 일제 강점기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여 수많은 전과를 올렸던 ‘김경천 장군 특별전 및 기념세미나’ 를 개최한다고 3일 밝혔다.고려인마을에 따르면, 현재 고려인문화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특별전에는 김경천 장군이 전투 중에 기록한 ‘경천아일록’ 필사본과 관련 기록물, 가족사진, 시, 서적 등 자료 수 십점이 전시되고 있다.오는 30일 오후 2시에는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의 사회로 ‘김경천 장군의 항일 애국정신 계승방안’ 에 관한 세미나가 고려인마을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다. 이날 세미나에는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이 참석해 발제를 하며 김올가 김경천 장군 증손녀와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의 증언과 관련 자료에 관한 토론 등이 진행된다.고려인마을은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세미나 참석자들을 위한 기념품도 준비했다. 기념품은 김경천 장군이 전투 중 기록한 일기를 책으로 편찬한 ‘경천아일록 영인본’(월곡고려인문화관, 민족문제연구소광주지부 공동편찬, 606페이지)이다.‘경천아일록’ 은 김 장군이 전쟁 중 쓴 기록물과 회고록을 일기 형식으로 남긴 저서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버금가는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김 장군은 일제 강점기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여 수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백마탄 장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이때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전설적인 김 장군으로 연해주 일대에 널리 알려지자 김일성이 그의 명성을 이용함에 따라 ‘김일성 가짜설’의 증거로 인용되고 있다.1936년 김 장군은 소련 정부의 한인 인텔리 피검정책과 관련 체포되어 3년 금고형을 선고 받은 후 복역하다 1939년에 잠시 석방되었다. 이것은 김경천이 민족주의자로 소련 공산주의에 참여하지 않은 대가로 추정된다.이후 간첩죄로 다시 체포되어 8년형을 언도받고 러시아 북부철도수용소에서 철도건설노동자로 강제 노역을 하다 1942년 1월 14일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심장질환으로 사망했으나 안타깝게도 어디에 안장됐는지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이에 고려인마을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김 장군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자 "김경천 장군 소공원‘ 건립 계획을 수립,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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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 78주년 광복절 맞아 봉오동 전투 재현광주 고려인마을은 15일 오전 11시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조상인 독립군이 일본군과 맞서싸워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를 재현한 행사를 벌였다.(사)고려인마을과 호남대학교 인문도시지원사업단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고려인마을 주민 등 500여 명이 참여했다.고려인마을은 1920년 6월 홍범도 장군의 독립군이 중국 지린성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를 물총 축제 형식로 재현했다.참가자들은 물총과 색색의 우비, 태극기 문양이 그려진 우산 들고 고려인마을 중심가를 행진했다. 대오 맞은 편에 검은색 우비차림으로 선 일본군들은 독립군의 장비보다 월등히 좋아 보이는 ‘스프레이 건’ 등으로 무장하며 진격 저지에 나섰다. 마침내 거리 끝까지 일본군을 몰아내자 독립군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양측의 대치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중 장엄한 음악이 흘러나오자 선봉에 선 홍범도 장군은 "일본군은 물러가라”고 외친 뒤 독립군에 전진과 사격 개시를 명했다. 봉오동 전투 재현이 끝난 뒤 고려인마을 주민들은 홍범도 공원에 설치된 두 개의 박을 향해 물줄기를 다시 한번 쏘아 댔다. 박이 터지며 ‘대한 독립 만세’와 ‘광복의 완성’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각각 펼쳐지자 주민들은 태극기 우산을 활짝 펼치며 러시아어로 만세를 뜻하는 "우라!”를 연신 외쳤다. 이후 참석자들은 공원 중앙의 ‘홍범도 장군 흉상’에 헌화하며 이 땅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선조들의 희생을 되새겼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우리는 연해주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지원했던 독립군의 후손”이라며 "이런 고려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많은 시민과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돼 너무 기쁘다. 마을 주민들과 힘을 모아 지역사회 발전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한편 봉오동 전투는 1920년 만주 봉오동에서 홍범도 등이 이끈 독립군 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대패시킨 전투다. 전투에서 일본군은 157명의 전사자와 200여명의 부상자를 낸 반면, 독립군은 4명이 전사하고 약간의 부상자만 발생한 것으로 기록됐다.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은 홍범도 공원에 모여 고려인마을 극단이 준비한 연극 '광복의 완성 봉오동 전투'를 함께 봤다. 이천영 고려인마을 목사는 "독립군은 고려인들의 조상이기도 하면서 한핏줄인 우리의 조상이기도 하다"며 "독립운동에는 너나 구분이 없었듯 영예로운 조상들의 뜻을 기리는 일에 모두가 함께 나설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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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고려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제1회 세계 고려인 대회광산구(구청장 박병규)가 19~20일 전 세계 55만 고려인의 국제적 연대와 미래 비전을 모색하는 ‘제1회 세계 고려인 대회’를 개최한다.광산구가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 준비위원회, 호남대(총장 박상철), 사단법인 고려인마을(대표 이천영)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고려인 국제 교류 행사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일보'지 창간 100주년 기념하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미래! K미래/묻고 답하다'란 국제학술대회이다. ‘K-미래대회’를 부제로 고려인마을과 호남대 등에서 민‧관‧학이 공동으로 마련한 다양한 행사와 연대‧화합의 장이 펼쳐진다. 부제의 알파벳 ‘K’는 한국(Korea)과 고려인(Корё-сара́м, 코료-사람, 러시아어)을 뜻한다. 19일 첫 시작으로 호남대에서 ‘K는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된다. 총 3개 섹션으로 첫 섹션에서는 고려인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K와 언론’을 다루며, 두 번째 섹션은 세계 유일의 고려인 유산을 보유한 월곡고려인문화관의 아카이브 방향성을 모색한다. 종합토론이 이루어지는 3섹션에서는 ‘K-디아스포라는 어디로 가는가’를 부제로 교육, 문화, 정책, 정체성 등 네 가지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해외 고려인협회와 카자흐스탄 ‘고려일보’ 등 국내외 400여 명의 고려인 관련 단체‧기관 관계자는 카자흐스탄의 고려일보 김콘스탄틴 총주필, 한블라디미르 고려일보 영상 기자, 김성조 전 고려일보 부주필, 이정희 작가이자 전 고려일보 문학부장, 채예진 고려일보 한국 특파원, 우즈베키스탄의 김블라디미르 작가이자 전 고려일보 기자, 한블라디슬라프 ‘고려사람’ 사이트 대표, 김브루트 고려신문 주필, 마가이 알라 고려신문 기자, 김빠벨 영상사진 작가, 러시아의 ‘러시아의 고려인들’ 신문 천발렌틴 주필, 배빅토리야 새고려신문 주필, 이철수 ‘러시아의 고려인들’ 신문 발행인 등이다. 광주 고려인마을, 광산구, 호남대학교 주최로 진행되었다. 주최측에 따르면 "K는 코리아,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말한다. 즉 국가 영역을 넘어선 Korea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공동체의 운명이라는 의미"다. 광주 박병규 광산구청장은 축사에서 "유라시아 대륙에서 'K'는 불굴의 의지를 상징합니다.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외친 "코레아 우라!"가, 삼일만세운동에 호응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회의'를 결성한 고려인 동포들이 4개 국어로 번역해 전 세계에 타전한 독립선언문이, 연해주 일대를 뒤흔든 '대한의용군'의 합성이 'K'의 뿔입니다"라고 전했다. 제1회 세계 고려인 대회는 고려인동포 정착 지원, 선주민과의 소통, 역사문화 공간 조성에 이르기까지 광산구가 그간 추진한 다양한 정책‧사업, 고려인마을과의 협력 과정을 되돌아보며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총 3개 섹션으로 첫 섹션에서는 고려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K와 언론’을 다루며, 두 번째 섹션은 세계 유일의 고려인 유산을 보유한 월곡고려인문화관의 아카이브 방향성을 모색한다. 3섹션에서는 ‘K-디아스포라는 어디로 가는가’를 부제로 교육, 문화, 정책, 정체성 등 네 가지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네 가지 방향 논의는 '국내 정착 고려인 4, 5세 교육' 문제,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의 문화예술교류 방향', '법적 지위, 노동문제, 국내 정착 지원',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범위와 연대'로 종합토론이 진행되었다. 제1세션은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신문' 김 브루트 편집장, '미디어사람'협동조합 채예진 이사장,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원장 장원창의 토론발표로 마감되었다. 제2세션의 주제는 'K의 문화유산'으로 고려인 문화 자료 아카이브 방향 모색, 고려인문화관 소장 자료, 고려인콘텐츠사업단, 고려인공동체의 민족문화전승전략 – 고려극장 등을 중심으로 발제되었다. 제3세션은 종합토론으로 'K는 어디로 가는가?'란 주제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이 나뉘어 4가지 문제를 토론했다. '고려일보'사의 김 콘스탄틴 총주필은 "모든 참석자들을 환영하고 '고려일보'100주년 관련 주제를 논의하는 것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어 월곡고려인문화관 김병학 관장에게 감사패와 카자흐스탄 상징 기념품을 수여했다. 알파라비 명칭 카자흐국립대학교 아시아연구소장 김 게르만 교수는 '고려일보 – 카자흐스탄 고려인 디아스포라를 통합하는 정보 및 문화 허브'란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여 참석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올해로 창간 100주년은 맞은 '고려일보'는 독립국가 카자흐스탄 공화국과 나이가 같다. 이 신문의 과거 제호는 '선봉'과 '레닌기치'였다." 고려일보의 언어는 러시아어가 기본 언어로 되어있고, 한국어 지면도 실려있지만 읽는 이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일보'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신문으로써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새 세대 고려인을 위한 문화-정보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레닌기치'에서 약 20여 년간 문학부장을 지낸 이정희 작가는 사할린 출신이다. 사라토브농업대학에서 한글로 30여 편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이 소설이 '레닌기치'에서 게재되고 이 기회로 신문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크즬오르다로 이주했다. 이날 한국어로 주제발표한 '고려인에게 우리말 신문은 무엇이었을까'라는 발제 내용은 " '한국말', '조선말', 아니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여러 지역에 분포된 고려인들이 이르는 '고려말', 이 3가지 중 어떤 말이 옳다 그르다 따지지 않고 그저 우리말이라면 누구나 우리 민족어를 떠올리리라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글로 작품을 쓰는 문인들에게 '레닌기치' 지면은 아주 귀중한 기록물"이라는 내용이다. '고려사람' 사이트 운영자인 한 블라디슬라브는 '한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가들과 모국어 신문 '선봉-레닌기치-고려일보'란 주제 발표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신문과 운명이 연계된 독립 운동가들을 소개했다. 사할린 새고려신문 배윅토리아 사장은 '고려일보'와 사할린의 '새고려신문'의 공통점을 말하고 74년 역사의 '새고려신문'의 역사와 활동을 소개했다. 이어 호남대 문화체육관에서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 출범식이 열렸다. 고려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우즈벡, 카자흐 등 4개국 고려인협회가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으로, 세계 고려인의 굳건한 연대를 위한 다짐과 결의를 선언할 예정이다. 특히, 첫 총회 의장은 신조야 사단법인 고려인마을 대표가 맡았다. 광주 박병규 광산구청장은 "제1회 세계 고려인 대회는 고려인동포를 적극 포용한 광산공동체의 상생‧연대가 세계 고려인을 하나로 연결하는 고리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광산구가 대한민국을 넘어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세계 고려인 연대의 거점으로 부상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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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치카' 최재형 부부, 순국 103년만에 국립서울현충원서 합동안장식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가 순국 103년 만에 고국 땅에 도착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합동 안장됐다.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최 선생 부부의 합장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이종찬 광복회 회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독립 관련 보훈단체장, 회원, 최재형 선생의 유족 등이 참석했다.최 선생의 묘는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됐으나 이른바 '가짜 유족 사건'으로 멸실돼 현재까지도 빈터로 남아있다. 앞서 최 선생의 묘는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됐으나 2009년 가짜 후손에 의해 다른 시신이 묻혔다는 사실이 확인돼 빈터로 남게 됐다.이후 유족들은 멸실된 묘의 복원을 지속적으로 희망해왔음에도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수 없었다.이에 국가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최재형 선생을 부인 최 엘레나 여사와 함께 국립묘지에 합장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최 선생은 ‘페치카’로 불렸다. 러시아어로 ‘난로’라는 의미로, 평생 시베리아 동포들을 돌봐줬던 그의 독립운동에 투신한 뜨거운 열청에 대한 존경의 의미이다. 1907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안중근 의사가 "집집마다 최재형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고 회고했을 정도로 그는 시베리아 동포들의 ‘대은인’으로 추앙으면서 '러시아의 페치카'라고 불렸다고 한다. 최재형 선생은 9세 때 부모를 따라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하여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모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조국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왔다. 그러나 일본군은 1920년 최 선생이 지원한 무기를 바탕으로 치른 청산리ㆍ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우수리스크를 급습해 최 선생을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족들과 동포들은 최 선생의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이후 최 선생의 부인 최 여사는 안중근 의사의 부인과 가족까지 돌보다 1952년 키르기스스탄에서 홀로 잠들었다 합장식에는 최 선생의 유족들과 박민식 장관, 이종찬 광복회 회장,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권경석,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러시아 사할린 동포를 대표하여 참석한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은 "러시아 동포들은 말도 배우기 전에 집안에 걸린 최재형 사진을 보면서 '페치카'라는 말이 각인되어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었다. 오늘 두 분의 합동봉환식을 맞이하게 되어 기쁘다"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회장은 "최채형 선생은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고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부인 최 여사는 자본가의 가족이란 이유로 키르기스스탄으로 유배되어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안중근 의사의 남은 가족까지 돌보다 1952년 키르기스스탄에서 홀로 잠들었다."고 전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날 추모사에서 "최재형 선생님과 같이 일신을 독립운동에 바치시고 그 곁에서 내조하며 독립운동을 함께하신 분들이 있어 광복을 쟁취할 수 있었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며 "이제 대한민국이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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